<책 소개>
태양을 만들려는 인간의 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상용화에 한 걸음 바짝 다가간 핵융합,
자석에 가둔 태양, 토카막이 밝혀줄 에너지의 새로운 미래
태양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어제도, 오늘도, 몇십 년,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태양은 뜨겁게 반짝이고 있다. 핵융합은 바로 꺼지지 않는 태양 에너지의 근원을 밝히는 데서 시작했다. 19세기 말 방사선이 등장하면서 원자의 문이 열렸고, 20세기 전반은 핵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전성기였다. 핵이 어떻게 쪼개지는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핵이 하나둘 합쳐지는 과정도 알고 싶었다. 수소가 합쳐져 헬륨이 되었고, 그때 줄어든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서 빛을 내고 있었다. 여러 과학자의 어깨 위에서 한스 베테가 이 별빛의 비밀을 밝혔다. 많은 사람이 모여 원자를 쪼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자를 합쳐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이제 거대한 수소폭탄의 에너지로 집과 공장에 불을 밝히고 싶었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작은 태양을 자석에 가두는 방법을 찾아냈다. ‘토카막Tokamak’이라는 핵융합로가 태어난 것이다.
토카막의 플라스마에는 악마가 여럿 살았다. 막대한 태양의 에너지를 마음대로 쓰고 싶었지만, 악마들은 그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그중 불안정성과 난류는 특히 길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거의 손에 들어왔다. 지금 만들고 있는 국제핵융합로(ITER)와 세계 각국의 연구소,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앞다퉈 성과를 내놓고 있는 젊은 스타트업의 노력과 도전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핵융합산업협회Fusion Industry Association가 내놓은 2023년 서베이 자료(https://www.fusionindustryassociation.org/fusion-industry-reports/)를 보면, 막연한 관심의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7조 원 이상이 이들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 곧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지 채 오십 년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지난 이십여 년간 실력 있는 연구자들과 꾸준한 투자로 초전도 핵융합로인 KSTAR를 만들었다. 이제는 KSTAR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놀라운 실험 결과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미래까지 빠짐없이 살펴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한스 베테와 함께 태양이 밝게 빛나는 이유를 찾아 나서며 핵융합의 원리를 소개한다. 이어 엔리코 페르미를 통해 맨해튼 프로젝트와 수소폭탄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펼친다. 2부에서는 실제로 존재했던 구소련의 비밀연구소를 배경으로 ‘사고의 용광로’라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통해 핵융합을 실현할 장치인 ‘토카막’을 만들고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독자들은 단순히 프로젝트의 관찰자가 아니라 실제 연구원의 한 사람으로 당대의 구소련 과학자들과 그들의 문제를 풀어 볼 것이다. 3부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ITER를 비롯해 전 세계의 주요 핵융합 연구소를 돌아보며 토카막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 4부에서는 토카막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과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남아 있는 여러 난제를 들여다볼 것이다. 5부는 KSTAR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의 역사를 되짚어 볼 것이다.
핵융합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누구나 된다고 말할 땐 이미 늦었다
실현 가능한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
2013년에 생긴 미국의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Helion Energy)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챗GPT를 만든 오픈에이아이(Open AI)의 경영자 샘 올트먼이 이 회사에 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2023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헬리온과 전력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핵융합에 대한 관심은 이제 단순한 기대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영민한 투자자와 기업들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앞다투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대화형 인공지능에 쏟아 넣은 투자가 실적으로 가시화되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양자컴퓨터와 핵융합 기업에 대한 투자가 지난 몇 년 새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핵융합 스타트업은 2018년 이후 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이들 기업이 나타났고, 그동안 이들은 다양한 시제품과 실험 결과를 내놓으면서 대담한 에너지 공급 계획을 발표해 왔다. 핵융합산업협회(Fusion Industry Association)가 내놓은 2023년 서베이 자료(https://www.fusionindustryassociation.org/fusion-industry-reports/)를 보면, 핵융합 연구에서 가장 앞선 미국과 영국에서도 많은 스타트업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ENN 그룹과 교토퓨저니어링이 민간 자본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연구소에서 주도하던 핵융합 기술 개발과 상용화 연구가 ITER라는 전 세계적인 규모의 핵융합로를 건설하며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면, 이제 비즈니스 전망을 확신한 실력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을 믿은 기업가들이 그들에게 현실화의 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실험실과 연구소에서 돌아가던 핵융합이 이제 전력망에 전기를 내놓고 공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며 우리 생활과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마친 것이다.
땅 위에 만든 작은 태양,
1억 도의 불꽃을 감싸안은 핵융합로가
바로 ‘토카막’
‘토카막’이라는 말은 낯설다. 서울 마포에는 무쇠막이라는 곳이 있다.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팔거나 국가에 바치는 공장이 많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막’이라는 게 ‘물건을 만드는 막사나 장소’를 의미하는 우리말이라는데, 토카막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런 의미인 줄 알았다. 도대체 이게 뭘까? 뭔가 신비한 이름 같은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말. 토카막은 바로 그런 말이다. 일본에는 토카막이라는 연주곡도 있고, 프랑스에는 같은 이름의 록밴드도 있다. 토카막은 사실 러시아어 торои дальная камера с магнитными катушками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자기장 코일이 감긴 토러스 형태의 용기’다. 즉 자석으로 감싼 튜브라는 말이다. 핵융합은 바로 이 튜브 안에서 일어난다. 이 낯선 러시아어가 핵융합 분야에서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핵융합 장치 중에서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바로 자기장 가둠 방식이고, 그 대표 주자가 바로 토카막이다.
소련의 탁월한 과학자들,
그들은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안드레이 사하로프, 이고리 탐, 이고리 쿠르차토프, 레프 아르치모비치. 소련의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과 러시아에도 수많은 훌륭한 과학자와 수학자, 공학자들이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 출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감춰져 있다. 언뜻 떠올려 봐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수준이 낮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미국보다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렸고,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도 빠르게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히틀러를 피해 간 독일 과학자들의 역할도 있었고, 스파이가 가져다준 정보도 한몫 크게 했지만, 어쨌거나 결과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라는 한계도 있을 테고, 지난 백여 년의 이념 대립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토카막이라는 핵융합로를 처음 만든 사람은 바로 소련인이다.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이고리 탐을 비롯한 물리학자와 공학자들이었다. 이들이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과 경쟁하며 토카막을 만들어 냈다.
플레밍의 왼손 법칙,
원리는 참 간단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는 언제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장이 있는 곳에 전하를 띤 입자가 지나가면 힘을 받는다. 이 세 요소의 방향을 손가락 세 개에 대응시켜 그 방향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 책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2부 ‘토카막의 탄생’이다. 여기에 ‘플레밍의 왼손 법칙’이 나온다. 그 뒤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 세 요소를 어떻게 마음먹은 대로 제어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피뢰침이 왜 찌그러지는지, 오로라는 왜 극지에 생기는지, 기름 위에 물을 아무리 살살 부어도 조금만 흔들리면 물이 기름 아래로 내려가는 건 왜 그런지를 통해, 이들 세 요소를 길들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교묘하고 영리하게 장치를 고안하고 절차를 만들어 냈는지 하나하나 알려 준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물리 시험 때 손가락을 이래저래 돌려가면 방향을 찾던 기억만 살아 있다면, 토카막에서 핵융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식도 거의 없고, 계산도 없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한네스 알벤이 자주 했다는, ‘내가 입자라면’이라는 가정만 할 수 있다면, 직관적인 그림과 알기 쉬운 설명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
‘수소 원자가 융합해 헬륨이 될 때 나오는 에너지’라는 핵융합 설명을 조금만 더 깊이 듣고 싶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사고의 용광로’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글쓴이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생각에 가슴을 찔려 마음을 깨치고 공감했다면, 과학책을 읽는 것은 설명서를 보며 레고 조각을 이리저리 돌리며 맞추다 보니, 어느새 에펠탑과 우주왕복선을 눈앞에 갖게 된 뿌듯함을 느끼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을 모아 깎거나 합쳐 멋진 돌도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역사든, 과학이든, 경제학이든, 재테크든, 감성과 이성을 함께 쓰는 모든 활동에 마찬가지다. 젠가를 할 때면 어떤 블록을 빼야 나무블록 탑이 무너지지 않을지 머리를 긁적이며 탑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
불모지에서 피워 올린 파란 불꽃
처음 봤을 땐 일제 강점기 때 사진인 줄 알았다. 1979년이면 아직 채 오십 년이 지나지 않은 과거지만, 당시 공릉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5호관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교수와 대학원생의 모습이 꼭 그랬다. 사진 아래에 찍은 날짜와 장소가 붙어 있어도, 이게 맞나 싶었다. 진짜 그 정도로 열악한 풍경이었다.
이 책의 5부는 한국의 핵융합 연구를 다룬다. 1979년 한국 최초의 핵융합로 SNUT-79를 만들며, 일일이 손으로 갈고 닦고 조이던 모습을 생생한 사진으로 실었다. 그간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만들고 테스트했던 각종 핵융합로를 갖가지 사연과 함께 상세한 특징과 실험 결과는 물론 그 모습까지 모두 담았다. 현재 한국의 핵융합 연구를 이끌고 있는 KSTAR에 관해서는 저자가 직접 설계 과정에 참여하며 겪었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넣었다. 부족한 인력, 일천한 경험, IMF라는 초유의 난관을 헤쳐나온 과정이 하나하나 녹아 있다. 1960년대 러시아 연구소에서 만들었던 토카막의 원리가 2000년대 한국에서 최첨단 초전도 자석을 결합해 어떻게 태어났는지 생생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에너지의 미래,
어디에서 찾을까
굳이 말 하나를 덧붙인다면, 아마도 ‘전자가 움직이며’ “빛이 있으라 하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전자가 움직이며 내는 전자기파가 빛이 될테니 말이다. 그럼 이 밝은 빛은 어떻게 낼 것인가? 이제껏 사람들은 나무를 때고, 석탄을 달구고, 석유를 태워 불을 밝혔다. 높은 곳에서 물을 떨어뜨리고, 파도도 이용하고, 햇빛을 반도체에 쬐기도 했다. 그리고 방사성 물질을 쪼개 에너지를 얻었다. 그러다 지구에 문제가 생겼고, 이제는 화석연료를 줄이기로 했다. 석탄과 석유를 적게 쓰고, 대신 다른 에너지를 찾기로 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거나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그 답을 찾는 것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핵융합 발전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핵융합이 이제는 ‘진짜로 가능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핵융합의 상용화는 언제 가능할까? 답은 아직 이르지만, 우리는 이런 과학적 물음 외에 이런 측면도 살펴 봐야 한다. 1950~60년대에는 나라마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감추고 비밀리에 연구했다. 하지만 그런 냉전의 시기에도 토카막 연구와 검증은 철의 장막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핵융합로를 통해 전 세계적인 지식과 통찰이 축적되고 공유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싶다. 목표는 있지만 성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서로 “으쌰으쌰”가 잘 된다. 마음도 잘 맞고, 서로 돕고,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성과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부터다. 내가, 내 팀이 무엇을 차지할지 마음 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한다. 국제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이 낮을 땐 벽이 없지만, 뭔가 될 듯하자 회사가 만들어지고, 특허로 감추고, 나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긴다. 핵융합 연구라고 왜 다르겠는가? 투자자와 기업들이 앞다퉈 투자하는데, 그들이 인류애와 박애 정신만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 또한 역시 우리의 에너지 문제다.
출처: 교보문고